24일 전, 명상은 한 번도 시작된 적이 없었다
3월 19일 새벽이었다. 그날까지 2년 동안 명상을 시도했다고 말은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명상에 도달한 적이 없었다. 매번 결가부좌를 잡았고, 매번 30분을 채우려 했고, 매번 다리가 저렸다. 그리고 매번 "왜 안 되지" 하고 끝났다.
그날은 좀 달랐다. 8분 만에 다시 무너졌는데, 평소 같으면 자책했을 자리에서 그냥 다리를 풀고 한참 앉아 있었다. 그러다 깨달은 게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한 건 명상이 아니라 명상의 흉내였다.
그날부터 24일을 적어 두었다. 무엇을 바꿨고, 어떤 게 떠올랐고, 무엇이 무너졌는지. 이 글은 그 24일의 기록이다. 정답을 알려주는 글은 아니다. 한 사람이 통과한 길을 그대로 남겨두는 것뿐이다.
1주차 (Day 1~7): 자세와 시간의 함정
첫 주의 변화는 자세와 시간이었다. 결가부좌를 버마식으로 바꿨고, 30분 타이머를 15분으로 줄였다.
둘 다 처음엔 어색했다. 결가부좌만큼 "수행하는 모양새"가 안 났고, 15분은 "충분히 안 한 것" 같았다. 그런데 한 주 지나니까 다른 게 보였다. 자세가 무너지지 않으니까 다리 통증으로 명상이 끊기는 일이 사라졌다. 시간 압박이 빠지니까 끝나기 전부터 시계를 흘끔거리는 일도 사라졌다.
그제야 알았다. 지난 2년 동안 내가 명상이라고 부른 시간의 90%는 자세 유지와 시간 측정이었다. 정작 호흡에 머무른 시간은 거의 없었다.
이 한 주에 알게 된 한 문장: 형식이 명상의 적이 될 수도 있다.
2주차 (Day 8~14): 분석을 내려놓기
2주차에 부딪힌 건 박사 과정 8년 동안 굳어진 분석 습관이었다. 명상이 잘 안 되면 변수를 더 적었다. 자세, 시간, 호흡 깊이, 그날의 감정. 노션에 표를 만들고 태그를 붙였다.
한 주 지나서 깨달았다. 명상보다 명상 기록이 더 오래 걸리고 있었다. 명상하는 동안에도 머릿속으로 "이거 적어야지"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기록을 줄였다. "오늘 앉음" 정도의 한 줄만 적었다. 처음엔 허전했는데, 며칠 지나니까 명상 중에 분석 모드로 전환되는 횟수가 줄었다. 좋은 명상의 정의를 내리려는 시도가 줄었다.
이게 박사 과정 사고방식과 명상 사이의 첫 충돌이었다. 박사 과정에서는 분석하면 답이 나왔다. 명상에서는 분석할수록 답에서 멀어졌다. 변수를 통제하려는 행위 자체가 명상의 기본 자세와 어긋났다.
2주차의 한 문장: 측정하지 않는 주의가 명상의 도구다.
3주차 (Day 15~21): 변화의 신호 (작은 호흡)
3주차부터 작은 변화들이 나타났다.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정말 작은 것들.
예를 들면 호흡이었다. 1주차까지는 호흡을 "관찰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코로 들어왔다 나간다"는 사실 정도만 알았다. 그런데 3주차에 호흡이 들리기 시작했다. 들숨이 차면 어디까지 차는지, 날숨이 어떻게 느려지는지. 분석이 아니라 그냥 그것이 거기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잡생각이 떠올라도 예전처럼 그것을 끊으려고 애쓰지 않게 됐다. 떠오르면 "생각하고 있네" 하고 그냥 흘려보냈다. 위파사나에서 말하는 "라벨링"인데, 책에서는 단순해 보였지만 실제로 적용되기까지 3주가 걸렸다.
그날은 25분을 앉았는데, 처음으로 "끝나는 게 아쉽다"는 감각이 왔다. 24년을 살면서 명상이 아쉬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3주차의 한 문장: 작은 호흡 하나가 들리는 건 큰 변화의 신호다.
4주차 (Day 22~24): 어느 순간 내가 내가 아니었다
4월 7일이었다. 그날은 평소처럼 아침에 25분 앉았다. 호흡이 잘 들렸고, 잡생각도 적었다. 끝나고 거실로 나왔는데, TV 화면에 내 모습이 잠깐 비쳤다. 검은 화면에 반사된 모습.
그 순간 이상했다. 저게 나인가? 하는 감각이 들었다. 분명 내 얼굴인데, 누구의 얼굴인지 모르겠다는 그런 느낌. 1~2초 정도 됐을 것 같은데, 아주 또렷했다.
처음엔 놀랐다. 어디 아픈 건가. 그런데 그날 하루 동안 더 이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평소처럼 기분도 평범했다. 오히려 명상 자체는 좀 더 깊어진 느낌이었다.
그날 저녁에 검색해봤다. 처음엔 "정신과적 증상"으로만 나오길래 더 무서웠다. 그런데 더 찾아보니 명상 수련자들 사이에서는 흔하게 보고되는 현상이었다. 영어로 'depersonalization'이라고 부르는데, 명상의 깊은 단계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체험 중 하나로 분류돼 있었다.
미국 NIH 산하 NCCIH에서도 명상 부작용 가능성을 정리한 자료를 공개하고 있고 (NCCIH 명상의 효과와 안전성), 브라운대학교 윌러비 브리튼 박사 그룹이 명상 수련자 60명을 인터뷰한 연구(Lindahl et al., 2017)에서도 비슷한 체험들이 분류돼 있었다.
그러니까 내 체험은 특별한 것도 아니었고 위험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아무도 내게 미리 말해주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그 후 — 이게 무엇이었나
4월 7일 이후로 그런 또렷한 체험은 다시 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을 기점으로 명상의 결이 좀 변했다.
전에는 명상을 "집중하는 시간"으로 생각했다. 잡생각을 줄이고 호흡에 모든 주의를 모으는 작업. 그런데 4월 7일 이후로는 명상이 "내려놓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는 시간.
이게 글로 적으면 단순해 보이는데, 24일 동안 매일 앉아서 한 발씩 옮기지 않으면 도달하지 않는 자리였다. 책으로는 못 알았던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체험을 누가 옆에서 미리 알려줬다면 훨씬 덜 무서웠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다. 만약 누군가 비슷한 체험을 하고 있다면, 일단 검색하기 전에 이걸 봤으면 한다. 흔한 일이고, 위험하지 않다. 다만 좀 낯설 뿐이다.
24일 동안 한 일을 정리하면
| 주차 | 바꾼 것 | 알게 된 것 |
|---|---|---|
| 1주차 | 결가부좌 → 버마식 30분 → 15분 |
형식이 명상의 적이 될 수 있다 |
| 2주차 | 기록 줄이기 분석 멈추기 |
측정하지 않는 주의가 도구다 |
| 3주차 | 호흡 라벨링 잡생각 흘려보내기 |
작은 호흡이 들리는 게 변화의 신호 |
| 4주차 | 25분 자연스럽게 앉기 | "내가 내가 아닌 듯한" 1초의 체험 |
24일이 짧다고 할 수도 있고, 길다고 할 수도 있다. 매일 25분만 잡으면 누구나 가능한 시간이다. 그런데 매일 25분 앉는 것 자체가 안 되어서 2년을 흘려보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들
이 24일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정답은 아직 없다. 몇 가지 떠올린 가설은 있다.
첫째, 박사 과정 사고방식이 명상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변수 통제, 가설, 측정. 이 셋이 명상에서는 다 방해 요소다. 명상은 통제하지 않을 때 시작되고, 가설을 세우지 않을 때 깊어진다.
둘째, 시간을 줄였더니 오히려 깊어졌다. 30분 강박이 명상의 80%를 망치고 있었다는 게 좀 충격이었다. 양보다 질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번에는 그게 진짜였다.
셋째, 체험을 해석하지 않으려 한다. 4월 7일의 1초가 무엇이었는지 너무 빨리 결론 내리지 않으려고 한다. 분석 욕망을 또 부른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냥 일어났다. 다음에 또 일어나면 또 일어났다고 적을 것이다.
혹시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아마 명상을 하고 있거나 시작하려는 사람일 것이다. 24일을 통과하면서 만약 누가 미리 알려줬더라면 좋았을 세 가지를 적어둔다.
- 자세는 본인이 25분 흔들리지 않는 것이면 된다. 결가부좌가 정답이 아니다. 버마식, 반가부좌, 의자 다 OK. 자세 집착은 명상의 입구를 막는다.
- 처음엔 15분으로 시작하는 게 낫다. 30분 강박은 명상을 과업으로 만든다. 짧게 자주가 길게 가끔보다 효과 크다.
- 이상한 체험이 와도 일단 놀라지 말 것. 이인증, 미간의 압박감, 내면의 목소리, 갑작스러운 평온. 이것들은 명상의 일정 단계에서 흔히 보고되는 현상이다. 위험하지 않다. 단지 처음이라 낯설 뿐이다.
나는 아직 명상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24일 통과한 사람일 뿐이다. 다만 그동안 알게 된 것을 누군가에게 미리 적어두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적어둔다.
읽어줘서 고맙다.